아기들도 죄인일까요? 아닐까요?

그동안 갓난아이들이 죄인인지 아닌지에 대한 수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원죄설은 천주교의 어거스틴에 의하여 전파하여진 오류입니다. 그의 원죄설에서 가장 터무니 없는 몇가지 가르침은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바로 그 죄에 모든 인류가 참여하였고, 또한 모든 인류가 바로 그 죄책감을 담당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무원죄잉태설까지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과 예언의 신에서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 아담과 아담의 모든 자손들의 육체와 영이 죽음으로 향하고 있음을 확인할수있습니다. 아담이 범죄함으로 인하여 이 지구는 또 그 지구상에 있는 사람들은 잃어버린 양처럼 생명의 근원에서 분리되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기 전에 바로 그러한 아담과 아담의 자녀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계획이 세워 졌는데 그것이 바로 구속의 경륜입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때에 갓 태어난 아이들을 보고 죄인이라고 부른다면 참으로 잔인스럽고 억지같은 소리로 들립니다. 왜냐하면 금방 태어난 아이는 거짓말도 하지 않았고 도둑질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갓 태어난 아이들이 죄인 중에 포함되는지의 여부를 자세히 살펴봅시다.

”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딤전 1:15

”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눅 5:32

”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요일1:8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롬 3:10

“갓난아기는 제외하고는 의인은 없나니” 라고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도 없다는 의미는 갓난아이들을 포함하여 모두를 의미하는 것이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3

갓난아이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 5:8-12}

”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마소서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 시 143:2

”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 시 51:5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 ” 욥14:4

Adam’s Fall Inexplainable.–In what consisted the strength of the assault made upon Adam, which caused his fall?
It was not indwelling sin; for God made Adam after His own character, pure and upright.
There were no corrupt principles in the first Adam,
no corrupt propensities or tendencies to evil.
Adam was as faultless as the angels before God’s throne.
These things are inexplainable, but many things which now we cannot understand will be made plain when we shall see as we are seen, and know as we are known (Letter 191, 1899). Gen3:6 {1BC 1083.6}

“설명이 불가능한 아담의 타락- 아담을 강타한 힘은 어디에 있었으며 무엇이 그의 타락의 원인이었을까?
그것은 아담 속에 내재하는 죄는 아니었다 (It was not indwelling sin).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품성을 따라 아담을 곧고 순결하게 지으셨기 때문이다.
첫째아담 속에는 부패한 원칙이나 나쁜버릇, 악으로 기울어지는 경향 등이 없었다.
아담은 하나님의 보좌앞에있는 천사들과 같이 흠이없었다.
이런 모든 점들로 볼 때 그의 타락을 쉽게 설며할수는 없지만, 지금 우리가 이해할수없는 많은 사실들은 주께서 지금 우리를 아심같이 우리가 알게 될 때에야 모든 것이 명백해질 것이다. (Letter 191, 1899). Gen 3:6 {1BC 1083.6}

내재하는 죄를 부패한 원칙이나 나쁜버릇, 악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아담의 모든 자녀들은 악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태어날 때부터 물려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악으로 기울어지는 경향= 내재하는 죄

내재하는 죄=부패한 원칙이나 나쁜버릇, 악으로 기울어지는 경향

” 사람은 본래 고상한 능력과 공정한 마음을 품부(稟賦)했다.
그의 본성은 완전했고 하나님과 융화했다. 그의 사상은 순결했고 그의 목적은 신성했다.
그러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그의 능력이 악용되어 사랑의 자리는 이기심으로 점령한 바 되었다.
그의 천성은 범죄로 말미암아 너무 약해졌으므로 자신의 힘으로는 악의 세력을 저항하기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사람은 사단에게 사로잡힌 자가 되었으니 만약 하나님이 특별히 간섭하지 아니하셨다면 그는 영원히 그대로 사로잡힌 자였을 것이다.” (정로 17)

이기심, 즉 자아중심이 죄의 출발이었습니다.
루스벨은 하나님 중심에서 자아중심이 되었습니다.
아담 역시 하나님 중심에서 자아중심이 되었습니다.
아담의 자손들도 하나님 중심에서 자아중심이 되었습니다.

“교육과 수양과 의지력(意志力)의 연단과 인간의 노력은 각각 상당한 분한(分限)을 가졌으나 이것들이 마음을 변화시키는 일에는 무력한 것이다. 이것들이 혹 행위의 외모적 단정을 만들어 낼 수는 있을지라도 마음을 고칠 수는 없으며 생애의 동기(動機)를 깨끗케 할 수도 없다. 사람이 죄에서 벗어나서 성결해지려면 먼저 마음속에서 동작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나니 곧 위로부터 새 생명을 받아야 한다. 이 능력은 곧 그리스도이시다. 오직 그의 은혜만이 죽은 심령의 기능에 생기를 주어서 그것을 하나님께로 즉 거룩한 데로 이끌 수 있다.” (정로 23)

“그리스도께서는 죄악으로 더럽혀진 마음을 씻으려고 오신 것이다. (소망 646)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요 3:3-7)

하나님의 영으로 자아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거듭나야 됨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침례 받으신 후 그리스도께서 요단강 둑에 엎드리셨을 때에 빛나는 금비둘기처럼 내려온 한 밝은 빛이 있었다.
그리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다. “이는 내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우리는 이 말씀들을 거듭거듭 읽지만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우리는 그 말씀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이 보인다.
그 말씀은 그대에게 그대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가납되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긴 인간의 팔로는 타락한 인류를 감싸고 계시는 한편,
그분의 신적인 팔로는 전능하신 자의 보좌를 붙잡고 계시며

그렇게 하여 땅과 하늘 그리고 타락한 유한한 인간들과 무한하신 하나님을 연결시키고 있다.
그 리하여 하늘과 유리되었던 이 땅은 하늘과 연결되었다. 타락한 인류가 다시 하나님의 은총을 회복할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과의 교통이 열렸다. 여기서 예수님은 시험의 광야로 들어갔으며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이르러왔던 것보다 일백 배나 더 혹심한 시험이 닥쳐왔다.…{CTr 211.2}

세 번 ‘타락한 인류’, ‘타락한 유한한 인간들’, ‘타락한 인류’ 라고하셨읍니다.

”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출 12:12-13

이 피를 믿음으로 적용하지 않은 초태생은 누구나를 막론하고 모두 다 멸망하였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이 시험을 거치고 심판을 받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있다.
나는 하나님이 당신의 심판을 애굽인들의 장자에게 내린 때처럼
믿는 부모의 믿음이 어린아이들을 덮어 준다고 대답한다…. {LDE 293.2}

만약에 아이들이 죄인이 아니라면, 예수께서 흘리신 보혈을 이 아이들에게 적용함 없이도 구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 없이 구원받을수 있는 사람은(갓난아이들도 포함하여) 하나도 없습니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죄가 무엇인지, 의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부지런히 가르쳐야 하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 6:6-7

유전적으로 물려 받은 죄로 기울어지는 경향과 또 아이들이 자라면서 계발된 악의 경향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세주 예수님께 나아가서 그분을 영접하고 그분의 모든 말씀에 굴복해야 합니다.
물론 자녀들도 예수님께 데리고 나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는 그렇게 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 1:21

어떤 사람들은 오해하기를 예수님의 인성은 타락한 아담의 모든 자녀들과 똑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그것은 말씀의 기초에서 떠난 추측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육신 하셨을때에 죄인으로 탄생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모든 아기들도 죄인이 아니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 많은 오해가 생겼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다른 모든 아이들과 똑같은 본성으로 태어나셨을것 같으면이 세상에 굳이 초림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일반 아이들 과 꼭 같은 본성을 가졌을 것같으면,
어떻게 우리의 모본이 되시고
구세주가 되시고,
또 하나님께 드릴 흠이 없는 죄를 속하기 위한 희생 제물이 되실수 있었겠습니까?

죄 지은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분의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 요 3:16

갓 태어난 아이가 타락한 인류중에 하나입니까?

아니면 타락한 인류와 관계 없는 다른 종류의 피조물입니까?

인간의 교만한 마음은 이 진리를 받아들이기가 힘들것입니다.

죄의 본성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마음은 자기가 죄를 선택할 때까지는 죄인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슬람교와 몰몬교의 가르침 가운데 하나는 아이들이 태어날 때에는 죄인이 아니라고 합니다.

온 세계가 아시다시피 이슬람 종교는 가장 뻔뻔스럽고 공격적인 종족을 생산하였습니다.

그들의 종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 중 어느 누구도 죄가 없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생애한 사람들,
고의로 악행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생명 그 자체를 희생하고자 한 사람들,
하나님께서 거룩한 빛과 능력으로 영화롭게 하신 사람들도 그들의 본성에 죄악이 충만함을 고백하였다.
그들은 육신을 신뢰하거나 자신들의 의를 주장하지도 않았으며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하였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모두 그와 같을 것이다.
우리가 예수께 더욱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분의 품성의 순결을 더욱 분명히 알면 알수록
우리는 더욱더 죄의 극악함을 알게 되고
자신들을 높일 마음이 더욱더 적어질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계속적인 영혼의 발돋음,
계속적이며 열렬한 죄에 대한 마음을 찢는 회개와 그분 앞에 마음을 겸비하게 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그리스도인적 경험에 있어서 진보의 매 발걸음이다 우리의 회개는 깊어질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우리의 충분함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며
다음과 같은 사도의 고백이 우리의 것이 되게 할 것이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롬 7:18; 갈 6:14).

기록하는 천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의 거룩한 싸움의 역사를 기록하게 하며
그들의 기도와 눈물을 기록하게 하라.
그러나 인간의 입술에서 “나는 죄가 없다 나는 거룩하다”는 선언을 발함으로 하나님께 욕을 돌리지 말라.
성화된 입술은 결코 그와 같은 참람된 말을 발하지 않을 것이다. (행적 561-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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