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명을 벗겨 드립시다.

 

어느 누구라도 아래의 글을 기도하신 후에 심사숙고히 읽는다면 하나님에  대한 오해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영광의 천사들은 주는 일, 즉 타락하고 불경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끊임없는 보호를 주는 일에서 그들의 기쁨을 찾는다. 하늘의 천사들은 사람의 마음에 호소한다. 그들은 이 어두운 세상에 하늘 궁정의 빛을 가져온다. 그들을 부드럽고 인내성 있는 봉사로 사람들의 심령을 감화시켜서 잃어버린 인류를 그들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것보다 더욱 밀접하게 그리스도와 교제하도록 이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작은 표상들을 떠나서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을 본다. 예수를 바라볼 때에 우리는 주는 것이 우리 하나님의 영광임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살고, “영광을 구치 아니하고 나를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노라”고 하셨다(요 8:28, 6:5, 7, 8). 이 말씀들 가운데 우주의 생명의 법칙이 되는 대원칙이 제시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하나님에게서 받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주시기 위하여 받으셨다. 이것은 하늘 궁정에서도 그러하고 모든 피조물을 위한 그의 봉사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사랑하시는 아들을 통하여 아버지의 생명이 만물에게로 흘러나간다. 또한 아들을 통하여 그것이 찬양과 기쁨의 봉사로 사랑의 조수처럼 만물의 대근원이신 분께로 다시 돌아온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혜(慈惠)의 순환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바 이로써 크신 시여자(施與者)의 품성과 생명의 법칙을 드러낸다.

이 법칙은 하늘 자체에서 깨어졌다. 죄는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덮는 그룹인루스벨은 하늘에서 첫째가 되기를 원했다. 그는 천사들을 제어하여 그들을 창조주로부터 떠나게 하고 그들의 존경을 자신이 받으려 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을 그릇 나타내고 자고하고자 하는 욕망의 원인을 하나님께로 돌렸다. 그는 자기의 악한 특성을 사랑의 조물주께 씌우려고 하였다. 이와 같이 그는천사들을 속이고 사람들을 속였다. 그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불신하게 하였다. 하나님은 공의와 지대한 위엄의 하나님이신 까닭에 사단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가혹하고 용서하지 않으시는 분으로 생각하게 하였다. 그는 이렇게 사람들을 이끌어 자기와 연합하여 하나님을 반역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비애(悲哀)의 밤이 세상을 내려 덮었다.

세상은 하나님에 대한 오해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다. 음울한 그늘이 밝아지고 세상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단의 기만적 세력이 깨어져야 했다. 이것은 힘으로는 할 수 없었다.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정부의 원칙과는 배치된다. 하나님은 사랑의 봉사만을 원하시는데 사랑은 명령으로 강요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힘이나 권위로 얻을 수 없다. 사랑은 오직 사랑으로만 일깨워진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 그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품성이 사단의 품성과 대조되어 드러나야 한다. 일을 하실 분은 우주에 오직 분밖에 없다. 하나님의 사랑의 높이와 깊이를 아시는 분만이 그것을 드러낼 수가 있었다. 밤같은 어두운 세상에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말 4:2)지 않으면 안 되었다.

구속의 경륜은 아담이 타락한 후에 세워진 사후 고안(事後考案)이 아니었다. 이 경륜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 알게 하신 그 비밀”(롬 16:25)의 계시였다. 이것은 영세 전부터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가 되어 온 원칙을 공개한 것이었다. 태초부터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사단이 반역할 것과, 그 반역자의 기만적인 권세를 통하여 인류가 타락할 것을 아셨다. 하나님께서 죄가 존재하도록 정해 놓지는 않으셨으나 죄가 존재할 것을 내다보시고 그 두려운 비상 사태를 위하여 대비책을 세워 놓으셨다.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당신의 독생자를 주시기를 언약하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요 3:16) 었다.

루스벨은 “내가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사 14:13, 14)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빌 2:6, 7)다.

이것은 자발적 희생이었다.예수께서는 아버지의 곁에 머물러 계실 수도 있으셨다. 그는 또한 하늘의 영광과 천사들의 경배를 보유할 수도 있으셨다. 그러나 그는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춰 주시고 멸망해가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왕위(王位)아버지께 돌려드리고 우주의 보좌에서 내려오기로 선택하셨다.

약 2천년 전에 오묘한 뜻을 가진 음성이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울려 퍼졌다.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왔나이다”(히 10:5-7). 이 말씀 가운데 영세 전부터 숨겨져 왔던 목적의 성취가 발표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려고, 곧 육신이 되시려고 하셨다. 그는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라고 말씀하신다. 창세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가지셨던 영광을 지니신 오셨다면 우리는 그의 임재하심의 광채를 견딜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그 광채를 보고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그의 영광의 나타나심이 가리워졌다. 그의 신성이 인성으로 가리워졌으니 곧 보이지 않는 영광이 보이는 사람의 형체 안에 감취어졌다. ”(소망, 21-23)

   또한  E.G.White께서  ‘ 시대의 소망’을 통하여 삼위일체 교리를 표명하게 되었다는 누명을 벗겨버려야 되지 않을까요 ?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