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롬 1:1~2 )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6~17)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 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 3:21-31)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롬 4:3)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 4:21~25)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롬 5:1~2)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롬 5:17~19)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 8:1~6)

‘회개는 믿음과 관련되어 있으며 복음서 가운데 회개는 구원을 얻는 데 있어서 긴요한 것으로 강조되었다. 바울은 회개에 대하여 설교하였다. 그는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행 20:20, 21)고 말하였다. 회개함이 없이는 구원함이 없다. 뉘우침이 없는 죄인은 그 마음으로 의를 믿을 수 없다. 바울은 회개를 묘사하여 죄를 위한 경건한 슬픔이라고 하였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고후 7:10)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회개 자체에는 공로의 성격을 띤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다만 잃어버린 죄인의 유일한 소망이시며 유일한 구주로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그 마음을 준비시킬 따름이다.

 죄인이 율법을 바라볼 때에 그가 범한 죄들이 자기 자신에게 밝히 드러나며 양심을 깨우치게 되며 정죄함을 받는다. 그의 유일의 안위와 소망은 갈바리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데 있다. 그가 과감하게 허락들을 주장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당신을 붙잡을 때에 그의 영혼에게 위로와 화평이 찾아오게 된다. 그는 “오, 하나님, 당신께서는 당신의 아들의 이름으로 당신께 나오는 모든 자들을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셨나이다. 저는 멸망할 수 밖에 없으며 무기력하고 소망이 없는 영혼이로소이다. 오, 하나님, 나를 구원하여 주소서, 그렇지 않으면 저는 멸망할 수 밖에 없나이다”라고 부르짖는다. 그의 믿음은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게 되며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무리 공의로우시며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죄인을 의롭게 하실 수 있다 할지라도 어떤 인간이든지 자신이 알고 있는 죄를 여전히 행하며 알고 있는 의무들을 등한시하면서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로 자신의 영혼을 가리울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의롭다 하심을 얻기 이전에 그 심령의 완전한 복종을 요구하신다. 인간이 의롭다 하심을 보유(保有)하기 위하여서는 계속적인 순종을 하여야 하며 사랑으로 역사하는, 활동적이며 살아 있는 믿음을 통하여 그 영혼을 순결케 하여야 한다.

 야고보는 아브라함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약 2:21-24)고 말한다. 인간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기 위하여는 그의 믿음이 마음의 모든 애정과 충동들을 지배할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해야 한다. 또한 믿음 자체가 완전함에 이르게 되는 것은 오직 순종에 의해서이다.

믿음은 허락의 조건임

 그리스도의 은혜가 없이는 죄인은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 있게 되며 그를 위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거룩한 은혜를 힘입을 때에 초자연적인 능력이 인간에게 부여되며 그 능력이 인간의 정신과 마음과 품성에 역사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나누어 받음으로써만 죄의 가증한 정체를 분별하게 되며 마침내 죄를 영혼의 성전에서 쫓아낼 수 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와 사귀게 되고 구원의 사업을 위하여 주님과 더불어 연합하게 되는 것도 오직 은혜를 통하여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사유하심을 약속할 만한지를 다루어 보시는 조건이다. 그것은 믿음 안에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어떤 공덕이 있어서가 아니라 죄의 치유제로 마련된 그리스도의 공로를 그의 믿음이 붙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믿음은 죄인의 범죄와 결함 대신에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순종을 제시할 수 있다. 죄인이 그리스도가 자신의 개인적인 구주이심을 믿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변함이 없으신 약속을 따라서 그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를 값없이 의롭게 하신다. 회개한 영혼은 자기의 대치물이시며 담보물이신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하여 죽으셨고 그의 대속이 이루어지고 그의 의가 됨으로써 자신의 의롭다 하심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3-5). 의란 율법에 순종하는 것이다. 율법은 의를 요구하는데 바로 이것을 죄인이 율법에게 빚지고 있다. 그러나 죄인은 그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 그가 의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얻는 것뿐이다. 그는 믿음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공로를 하나님께 가져갈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의 손종하심을 죄인의 계정에 두신다. 인간이 실패한 자리에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시고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믿는 영혼을 받으실 뿐만 아니라 용서하시고 의롭게 하시며 그를 마치 의인인 것처럼 취급하시고 당신의 아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그를 사랑하신다. 믿음이 의로 간주되는 것은 바로 이런 까닭에서이며 용서받은 영혼은 은혜에서 은혜에 이르게 되며 빛에서 더 큰 빛으로 나가게 된다. 그는 기뻐하면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3:5-7)고 말할 수 있다.

 또 다시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2, 13). 102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고 말씀하셨다. 우리들은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므로 우리들 앞에 놓여 있는 것이 결코 낮은 표준이 아니다. 우리들은 개인적으로 구원을 받아야 하며 시험과 시련의 날에 우리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를 분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개인적인 신자들로 구원을 받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얻기 위하여 어떤 일을 해야만 한다는 뜻에서 하늘을 기어오르려고 생각함으로써 바른 길을 잃고 있다. 저들은 혼자의 힘으로 하는 노력으로 저들 자신을 개선해 보려고 애쓴다. 저들은 이런 방법으로 결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의 희생 제물로서 죽으셨고 우리들의 모본으로 생애하셨으며 우리들의 대제사장이 되심으로써 그 길을 마련해 놓으셨다. 주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 라고 말씀하신다. 만약 우리들 자신의 어떤 노력에 의해서 단 한 계단이라도 사다리를 오를 수 있었다면 그리스도의 말씀은 진실한 것이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될 때에 선한 행실은 우리들이 생명의 길에 있다는 효과적인 증거가 될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길이 되셔서 우리가 하늘로 가는 참된 길을 걷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될 것이다.

그분은 우리의 의가 되심

 그리스도께서는 정신을 살피시며 우리들이 믿음으로 우리들의 멍에를 지고 가는 것을 보실 때에 주님의 완전하신 신성이 우리들의 허물들을 대속해 주신다. 우리들이 최선을 다할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의가 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보내시는 빛의 모든 광선이 우리로 세상의 빛이 되게 한다(서신 33, 1989).

 회개한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뉘우치고 그리스도의 속죄가 그를 위한 것임을 깨닫고 이 속죄를 이생과 내생의 유일한 소망으로 받아들일 때, 그의 죄가 용서를 받는다. 이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이다. 모든 믿는 영혼은 자신의 뜻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일치시키고 회개와 뉘우침의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구속자의 속죄의 공로를 믿는 믿음을 나타내어 능력에서 능력으로, 영광에서 영광으로 전진해야 한다.

 용서와 칭의는 하나이며 동일한 것이다. 믿음을 통하여, 믿는 자는 사단과 죄악의 자녀인 반역자의 위치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충성된 백성의 위치로 나아오게 되는데, 그것은 타고난 선에 의해서가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그를 입양하여 그분의 자녀로 받으시기 때문이다. 죄인은 그의 죄를 그의 대리자요 보증인이 담당하기 때문에 죄의 용서를 받는다. 주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이렇게 말씀하신다. “여기 나의 자녀가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 사망의 선고를 유예하고, 나의 생명보험증권, 곧 영생을 그에게 줍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의 자리를 대신하여 그의 죄에 대한 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용서받고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 흠 없이 서게 된다.

 죄인이 실수를 범할지라도 그는 무자비하게 쫓겨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우리의 범죄와 죄악을 용서해 주는 것은 아버지의 대권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셔서 우리의 형벌을 중지하시고 우리에게 당신 자신의 의를 옷 입혀 주셨기 때문이다. 그분의 희생은 공의(公義)의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킨다.

 칭의(稱義)는 유죄선고(有罪宣告)와 반대이다.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가 전혀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주어진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속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위하여 범죄와 죄악을 용서하신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흉악한 범죄자가 하나님의 은총 안으로, 그리고 영생의 강한 소망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이 기별은 세상을 위한 것이다. “누구든지”란 말은 조건에 부합되는 어떤 사람이나 모두가 축복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개인의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된다. 우리가 영원한 상급을 받을 수 있는 모든 준비가 갖추어져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속죄제물, 우리의 대리인, 우리의 보증인, 우리의 거룩한 중보자이시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히 9:24)신다.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중보는 우리의 대리인이요 보증인으로서 그분 자신이라는 제물에 나타난 그분의 공로를 아버지께 제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하늘로 올라가셨기 때문이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1:1, 2).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느니라”(요일 4:10).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 7:25).

 이 성경 말씀을 볼 때 그대가 죄인이고 무가치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대를 받아 주시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그대의 영혼이 괴로워하고 불신 속에 빠지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하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약 4:8). 그대의 사정을 그분 앞에 제시하고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그대를 위해 흘리신 보혈의 공로를 간구하라. 사단은 그대를 엄청난 죄인으로 비난할 것이다. 그런데 그대는 그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대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죄인임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는 구주가 필요하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나에게는 구원을 주장할만한 아무런 공로와 선이 없다. 그러나 나는 모든 죄를 속죄하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흠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를 하나님 앞에 제시한다. 이것이 나의 유일한 탄원이다. 예수님의 이름이 나를 아버지께 가까이 나아가도록 해준다. 그분의 귀와 마음은 나의 가장 연약한 간구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열려 있으며, 그분께서는 나의 간절한 필요를 채워주신다.”

이것이 칭의이다

 회개한 죄인을 하나님께 가납되게 해주고 그의 칭의를 이루어 주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이다. 그의 생애가 아무리 죄악적이었을지라도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믿으면, 그는 그리스도의 입혀주는 의의 흠 없는 예복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

 범죄와 죄악으로 거의 죽을 지경이 된 죄인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소생함을 입는다. 그는 믿음으로 예수님께서 자기의 구주가 되시고 영원히 살아 계셔서 “그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믿는 자는 그를 위해 이루어진 속죄를 통하여 효능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닫고, 곧 그처럼 무한한 값으로 산 구원의 완성을 깨닫고 그의 영혼이 찬양과 감사로 충만해진다. 그는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며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가 하늘의 베틀로 짜여지고 자기의 순종으로 이루어져서 그분의 이름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회개한 영혼에게 입혀진 것을 깨닫는다.

 죄인이 예수님의 비길 데 없는 매력을 보게 될 때, 죄는 더 이상 그에게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만사람에 뛰어난 분, 그 전체가 사랑스런 분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는 그 방대한 계획이 존귀한 목적에 의해서만이 비견될 수 있는 복음의 능력을 개인적인 경험을 통하여 깨닫게 된다.

 우리에게는 살아계신 구주가 있다. 그분은 요셉의 새 무덤 속에 계시지 않고 사망에서 일어나 모든 믿는 영혼을 위한 대리자와 보증인으로서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죄인은 예수님의 공로를 통하여 의롭게 된다. 이것은 인간을 위해 지불한 몸값이 완전하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은 회개하는 죄인을 아버지께서 받아주신다는 보증이다. 이럴진대 우리가 의심하고 믿고, 믿고 의심하는 모호한 경험을 가져야 할 것인가?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 가납되게 하시는 담보물이다. 우리는 은총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서 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어떠한 공로로 인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이신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자 지성소에 서 계신다. 그곳에서 그분은 자기의 백성을 매 순간 나타내어 그분 자신 안에서 완성시키는 일을 중단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가 아버지 앞에 그렇게 제시된다는 이유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자비를 이용하여 부주의하고 무관심하고 방종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는 죄의 봉사자가 아니시다. 오직 우리가 믿음으로 그분 안에 거할 때만 그분 안에서 완전해지고 사랑하는 자녀로 그분께 가납된다.

우리 자신의 선한 행실로는 결코 완전함을 이룰 수 없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영혼은 자기 자신의 의를 포기한다. 그는 자기 자신이 불완전하고, 자신의 회개가 미흡하고, 자신의 가장 강한 믿음도 연약한데 불과하고, 자기의 가장 값진 희생도 빈약하다는 것을 깨닫고 십자가의 발 아래 겸손하게 엎드린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서 한 음성이 그에게 들려온다. 놀랍게도 그는 “그대는 그분 안에서 완전하다”라는 기별을 듣는다. 이제 그의 영혼은 편히 쉬기만 하면 된다. 더 이상 그는 자기 자신 안에서 가치있는 어떤 것을, 하나님의 호의를 얻기 위해서 공로 있는 어떤 행위를 발견하고자 애쓰지 않아도 된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바라봄으로써 그는 그리스도의 평화를 발견한다. 왜냐하면 용서라는 글자가 그의 이름 위에 쓰여져 있고 그는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골 2:10)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의심에 익숙해진 인간성 때문에 이 위대한 진리를 붙잡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평화를 영혼에게 가져다 주며 얼마나 생기에 넘치는 삶을 가져다 주는가! 하나님께 가납되기 위한 의를 얻고자 우리 자신을 바라볼 때, 우리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라는 말씀에서 잘못된 곳을 바라보게 된다.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광으로 말미암”(고후 3:18)기 때문이다. 그대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바라보므로 그대의 완전을 찾아야 할 것이다.

 범해진 하나님의 율법 앞에 설 때 죄인은 스스로를 정결하게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는 그분의 무한한 사랑의 대상이 되어 그분의 흠 없는 의의 옷으로 입혀진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위해서 예수님은 기도하셨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요 17:17-22).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삽나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5, 26).

 믿는 죄인을 완전하게 하여 그를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하나님께 나타나게 해주는 그런 의의 본질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신다는 하나님의 보증된 말씀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절대적인 신뢰로 그분의 말씀을 의지하고 그분의 가장 풍성한 축복을 누리게 하신다.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나를 하나님께로서 온 줄 믿는고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요 16:27).” (믿음과 행함 10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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